“창업하는 마음으로 썼죠”···김중혁이 만든 ‘꿈 비즈니스’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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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6-07-18 08:13본문
소설가 김중혁이 4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 <꿈이다 아니다>(안온북스)에는 인간의 ‘꿈’을 이용해 돈을 버는 기업 ‘달리’가 등장한다. 이들이 제공하는 ‘갈라 서비스’는 고객이 원하는 꿈을 맞춤형으로 제작해 제공하는 뇌파 제어 시스템이다. 현실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잊게 하는 달콤한 꿈을 선사하는 이 서비스는 고가임에도 인기를 끌며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SF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를 떠올리게도 하는 소설 속 가짜 낙원은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어쩌면 곧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정말 창업하는 마음”으로 소설 속 세계관을 구상했다는 작가를 지난 10일 전화로 만났다.
달리는 사람들을 꿈속에 가둬둔 채 이들의 몸을 매매하려는 범죄를 계획한다. 이에 맞서는 경찰 주아연, 아연의 오빠 주이창, 달리의 초기 개발자 한가진의 이야기가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2023년 시작한 소설은 완성까지 약 3년이 걸렸다. 그의 첫 장편이었던 <좀비들> 이후 마감에 이렇게 시간이 많이 든 작품은 없었다. 김중혁은 “서술 방식에 고민이 많았다”며 “총 10개 정도의 버전이 있었다. 주아연 1인칭 시점으로도 써보고 주이창 1인칭 시점으로도 썼다. 3인칭으로도 바꿔보다 결국 지금의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다섯 개 부로 나뉜 소설은 다양한 시점으로 서술돼 있는데, 1부는 주이창과 주아연의 1인칭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고 4부엔 수사관들의 모습을 3인칭으로 그린다.
그는 “꿈이라는 내밀한 세계를 기록하는데, 3인칭으로 하면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엿보는 기분이 들어서 1인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주이창 시점에서 쓰면 주아연의 이야기가 헐거워지고 주아연 시점으로 하면 주이창의 이야기가 헐거워졌다. 고민하다 여러 방식을 섞었다”며 “오랫동안 글을 써서 더 새로운 것이 없나라는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도 같다”라고 말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의 기술 발달 역시 고민거리였다. 그가 글을 쓰던 사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해 사회 전반에 AI 서비스가 일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는 “기술이 계속 발전하니까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가 낡거나 (현실에) 따라잡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며 “AI의 진화를 목격하며 글의 방향을 수정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는 디지털 기술이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돈을 빼가는지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상상의 세계를 떠나 현실 한국에서도 ‘갈라 서비스’가 나타난다면 인기를 끌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그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소설 속 달리의 사업을 “창업하는 마음으로 구성했다”며 “사람들이 ‘갈라 서비스’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일종의 마취제 같은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인간 김중혁도 기술의 발전을 긍정하는 쪽에 가깝다. 새로운 기기나 프로그램을 먼저 써보는 것을 즐긴다. 최근엔 자연어 프롬프트로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바이브 코딩’을 자주 써보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사람들의 시간과 돈을 빼앗는 다양한 즐길거리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도 그는 “소설은 경쟁자가 없다”고 말한다.
“다른 모든 장르는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소설은 거의 유일하게 현재에도 혼자 창작한다. 단점이 많은 방식이지만, 한 사람이 가진 어둡고 내밀한 이야기를 깊이 들어가는 것은 소설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 많은 것들이 나온다고 해도 결국 소설이 그 중심에 있을 것 같다.”
이상은 그 이름처럼 이상한 예술가였다. ‘오감도’라는 난해한 시를 썼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하다 각혈을 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한국어 시를 쓰며 자신을 큐비스트라 칭했다. 기생 금홍과 사랑에 빠져 제비다방을 열었고, 금홍이 손님을 맞는 동안 뒷방에서는 <날개>를 썼다. 그리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쳤다.
건축가였고, 시인이었고, 소설가였고, 화가였다. 그런데 그 이질적으로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이 떠오른다. 나는 그게 바로 이상이라는 한 편의 큐비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남긴 작품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이상만 한 작품이 있을까. 그렇게 매력적으로 불안한 작품은 드물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특별 섹션에서 이상을 만났을 때 나는 다른 누구보다 반가웠다. 특히 내 발길을 오래 붙잡은 것은 이상의 자화상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얼굴에서 ‘존 버거’를 떠올렸다. 모르겠다. 존 버거는 초상화를 잘 그린 화가도 아니고, 이상을 연구한 평론가도 아니다. 그런데 왜 존 버거인지 알 수가 없어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상에 비하면 존 버거는 ‘행운아’였다. <본다는 것의 의미>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스타덤에 오른 미술 평론가였다. 하지만 이후 런던을 떠나 알프스 산골 마을에서 농부이며 작가로 더 긴 세월을 산 사람이다.
누구보다 예술비평을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예술에 대해서만큼은 설명하기보다 그냥 먼저 살아낸 사람. 삶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존 버거와 이상이 닮은꼴이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에야 깨닫는다. 그 정직함이랄까, 나라는 존재 전체로 실험하는 용기랄까? 그 또한 닮았다.
생각해보면 큐비스트로서 시각적인 시 쓰기를 지향했던 예술가는 더 있었다. 기욤 아폴리네르. 화가가 아니었지만 피카소와 브라크 곁에서 큐비즘의 가장 중요한 옹호자로서 책을 썼고, 시와 그림이 합쳐진 칼리그램이라는 형태시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은 그 ‘이상’이었다. 그는 큐비즘을 결코 해설하지 않았다. 다만 시 자체를 큐비즘으로 만들었다. 형태시처럼 활자 배열로 단순히 그림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의 시선을 해체하고 읽는 행위 자체를 큐비즘화하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게 바로 ‘오감도’라는 시다.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만약 이상이 경성이 아니라 파리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피카소와 브라크를 만나고, 아폴리네르와 카페에서 밤새 예술을 이야기하며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슬퍼진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이상은 경성이었기에 가능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식민지라는 시대의 균열 속에서 그는 언어를 해체했고, 시간을 포개고, 하나의 ‘나’를 여러 개의 ‘나’로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시를 쓰려는 실험이 아니라, 시대를 견디기 위한 존재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상의 시는 읽을 때마다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누군가 읽는 순간마다 새롭게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이상을 만날 수 있다면? 예술가에게는 그만한 ‘이상’, 그만한 ‘꿈’은 아마도 단연코 없을 것이다.
달리는 사람들을 꿈속에 가둬둔 채 이들의 몸을 매매하려는 범죄를 계획한다. 이에 맞서는 경찰 주아연, 아연의 오빠 주이창, 달리의 초기 개발자 한가진의 이야기가 소설의 뼈대를 이룬다.
2023년 시작한 소설은 완성까지 약 3년이 걸렸다. 그의 첫 장편이었던 <좀비들> 이후 마감에 이렇게 시간이 많이 든 작품은 없었다. 김중혁은 “서술 방식에 고민이 많았다”며 “총 10개 정도의 버전이 있었다. 주아연 1인칭 시점으로도 써보고 주이창 1인칭 시점으로도 썼다. 3인칭으로도 바꿔보다 결국 지금의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다섯 개 부로 나뉜 소설은 다양한 시점으로 서술돼 있는데, 1부는 주이창과 주아연의 1인칭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고 4부엔 수사관들의 모습을 3인칭으로 그린다.
그는 “꿈이라는 내밀한 세계를 기록하는데, 3인칭으로 하면 마치 다른 사람의 꿈을 엿보는 기분이 들어서 1인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주이창 시점에서 쓰면 주아연의 이야기가 헐거워지고 주아연 시점으로 하면 주이창의 이야기가 헐거워졌다. 고민하다 여러 방식을 섞었다”며 “오랫동안 글을 써서 더 새로운 것이 없나라는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도 같다”라고 말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현실의 기술 발달 역시 고민거리였다. 그가 글을 쓰던 사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해 사회 전반에 AI 서비스가 일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는 “기술이 계속 발전하니까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가 낡거나 (현실에) 따라잡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며 “AI의 진화를 목격하며 글의 방향을 수정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는 디지털 기술이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돈을 빼가는지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상상의 세계를 떠나 현실 한국에서도 ‘갈라 서비스’가 나타난다면 인기를 끌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그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소설 속 달리의 사업을 “창업하는 마음으로 구성했다”며 “사람들이 ‘갈라 서비스’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일종의 마취제 같은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인간 김중혁도 기술의 발전을 긍정하는 쪽에 가깝다. 새로운 기기나 프로그램을 먼저 써보는 것을 즐긴다. 최근엔 자연어 프롬프트로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바이브 코딩’을 자주 써보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사람들의 시간과 돈을 빼앗는 다양한 즐길거리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도 그는 “소설은 경쟁자가 없다”고 말한다.
“다른 모든 장르는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소설은 거의 유일하게 현재에도 혼자 창작한다. 단점이 많은 방식이지만, 한 사람이 가진 어둡고 내밀한 이야기를 깊이 들어가는 것은 소설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 많은 것들이 나온다고 해도 결국 소설이 그 중심에 있을 것 같다.”
이상은 그 이름처럼 이상한 예술가였다. ‘오감도’라는 난해한 시를 썼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하다 각혈을 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한국어 시를 쓰며 자신을 큐비스트라 칭했다. 기생 금홍과 사랑에 빠져 제비다방을 열었고, 금홍이 손님을 맞는 동안 뒷방에서는 <날개>를 썼다. 그리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쳤다.
건축가였고, 시인이었고, 소설가였고, 화가였다. 그런데 그 이질적으로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 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이 떠오른다. 나는 그게 바로 이상이라는 한 편의 큐비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남긴 작품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이상만 한 작품이 있을까. 그렇게 매력적으로 불안한 작품은 드물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특별 섹션에서 이상을 만났을 때 나는 다른 누구보다 반가웠다. 특히 내 발길을 오래 붙잡은 것은 이상의 자화상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얼굴에서 ‘존 버거’를 떠올렸다. 모르겠다. 존 버거는 초상화를 잘 그린 화가도 아니고, 이상을 연구한 평론가도 아니다. 그런데 왜 존 버거인지 알 수가 없어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상에 비하면 존 버거는 ‘행운아’였다. <본다는 것의 의미>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스타덤에 오른 미술 평론가였다. 하지만 이후 런던을 떠나 알프스 산골 마을에서 농부이며 작가로 더 긴 세월을 산 사람이다.
누구보다 예술비평을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예술에 대해서만큼은 설명하기보다 그냥 먼저 살아낸 사람. 삶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존 버거와 이상이 닮은꼴이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에야 깨닫는다. 그 정직함이랄까, 나라는 존재 전체로 실험하는 용기랄까? 그 또한 닮았다.
생각해보면 큐비스트로서 시각적인 시 쓰기를 지향했던 예술가는 더 있었다. 기욤 아폴리네르. 화가가 아니었지만 피카소와 브라크 곁에서 큐비즘의 가장 중요한 옹호자로서 책을 썼고, 시와 그림이 합쳐진 칼리그램이라는 형태시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은 그 ‘이상’이었다. 그는 큐비즘을 결코 해설하지 않았다. 다만 시 자체를 큐비즘으로 만들었다. 형태시처럼 활자 배열로 단순히 그림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의 시선을 해체하고 읽는 행위 자체를 큐비즘화하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게 바로 ‘오감도’라는 시다.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만약 이상이 경성이 아니라 파리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피카소와 브라크를 만나고, 아폴리네르와 카페에서 밤새 예술을 이야기하며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슬퍼진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하는 이상은 경성이었기에 가능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식민지라는 시대의 균열 속에서 그는 언어를 해체했고, 시간을 포개고, 하나의 ‘나’를 여러 개의 ‘나’로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시를 쓰려는 실험이 아니라, 시대를 견디기 위한 존재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상의 시는 읽을 때마다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누군가 읽는 순간마다 새롭게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이상을 만날 수 있다면? 예술가에게는 그만한 ‘이상’, 그만한 ‘꿈’은 아마도 단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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