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팔로워 탁 트인 시야, 안락한 주행…다재다능 ‘신개념 생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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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7-23 04:28본문
인스타 팔로워 차체 바닥에 묵직한 배터리 배치탄탄한 안정감·승차감 ‘인상적’패밀리카로 다목적 사용에 최적넓은 창에 실내 활용도 자유자재고속 주행 시 전비 저하 아쉬움도
과거 서민들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통학 차량의 대명사였던 ‘봉고차’가 전기차 시대를 맞아 가장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변신했다.
기아가 선보인 첫 중형 목적기반모빌리티(PBV) ‘PV5’는 단순한 승합차를 넘어 공간의 개념을 통째로 바꾼 차량이다. 요즘 핫하다던 PV5 패신저 모델을 이틀 동안 타고 서울 도심과 자유로 등 고속화도로를 직접 달려봤다.
운전석에 올라타자마자 기존 승합차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이색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탁 트인 시야다. 앞 유리가 넓어 전방 개방감이 압도적이다. 1열 운전석과 조수석의 양옆 창문은 탑승자의 허리선까지 내려올 정도로 깊게 파여 몸이 붕 뜬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우주선 조종석에 앉아 비행을 준비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좌우 A필러 부분의 작은 쪽창도 시야를 한층 더 넓혀줬다.
시트는 일반 승용차보다 꽤 높았다. 옆을 지나는 대형 세단이나 웬만한 SUV의 천장이 내려다보일 정도였다. 차가 워낙 높다 보니 ‘운전하기 너무 큰 차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본격적인 주행에 나서니 이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실제 코너를 돌거나 좁은 길을 다녀보면 차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PV5는 전장 4700㎜, 전폭 1900㎜로 보기와 달리 준중형 SUV인 스포티지와 엇비슷한 덩치를 지녔다. 운전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다. 반면 전고는 1905㎜로 껑충 높다. 그 덕에 실내 공간은 극대화됐다. 다마스나 레이처럼 전폭 대비 전고가 높은 차량은 무게중심이 위로 쏠려 거동이 불안해지기 쉽지만, PV5는 차체 바닥에 묵직한 배터리를 깐 덕분에 주행 안정감을 탄탄하게 확보했다.
전기차 특유의 매끄럽고 안락한 승차감은 이 차의 가장 큰 미덕이다. 내연기관 상용차의 특징인 거친 진동이나 소음이 전혀 없고, 출발하거나 속도를 올릴 때 울컥거림 없이 부드럽게 나아갔다. 1열보다 바닥면이 낮고 휠베이스 중간에 위치한 2열 좌석 승차감은 패밀리카나 택시로 쓰기에 손색이 없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덕분에 지상에서 차량 바닥까지의 높이가 기존 승합차보다 낮아 어린아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도 계단을 오르내리듯 편안하게 타고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인성이 뛰어난 12.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에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한 부분도 편의성을 더했다.
트렁크 공간도 인상적이었다. 기본 용량이 1330ℓ로,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2310ℓ까지 확장돼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움직이는 생활 공간’에 닿으려는 진화가 엿보였다. 유튜브 등에는 PV5를 캠핑용으로 활용하는 후기 영상이 적지 않다. 각종 캠핑 장비를 싣기에 널찍하고 야외에서 전기제품을 쓸 수 있는 ‘V2L’ 기능이 구비돼 차박용으로 애용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2열을 접고 바닥을 완벽하게 평탄화하려면 전용 에어매트나 차박용 평탄화 키트를 따로 사야 해 추가 비용이 든다. 맞춤형 에어매트는 20만~30만원대, 수납 서랍이 포함된 전문 모듈형 평탄화 키트는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 주머니 사정을 고민하게 만든다.
운행하면서 아쉬운 부분도 눈에 밟혔다. 높은 전고 덕분에 실내 개방감은 크지만, 도심 속 주차장을 드나들 때는 내내 불안감이 엄습했다. 차량 전고가 대부분의 지하주차장 제한 높이인 2.1m보다는 낮아도 진입할 때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제한 높이가 1.8m인 오래된 건물도 종종 있어 승용 목적으로 구매하려는 소비자라면 자주 이용하는 주차장 환경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타협한 흔적이 보였다. 상자형 디자인을 채택한 데다 71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해 고속 주행 시 전비가 다소 떨어진다. 1회 충전 공식 주행거리는 복합 기준 35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겨울철 혹한기 고속도로 주행 시에는 280㎞ 안팎까지 뚝 떨어진다는 후기도 있다. 최고 출력이 160마력대 초반인 데다 최고 속도도 시속 139㎞로 제한돼 시원스러운 가속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도심 속 배송이나 단거리 레저용으로는 훌륭하지만 장거리 주행이 잦다면 충전 압박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말 감성 캠핑을 계획한다면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설정할 때 조금은 신중해져야 할 듯했다. 탁 트인 개방감과 널찍한 적재 공간에 취해 무턱대고 깊은 산속이나 오지로 핸들을 꺾었다가는, 자연의 낭만을 즐기기도 전에 인근 초고속 충전소를 찾아 헤매는 ‘스릴’을 경험할 수도 있다. 로맨틱한 풍경 속에서 배터리 경고등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먼 곳 대신 서울 근교의 호젓한 캠핑장을 찾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글 쓰기 위해서 말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생활이 그렇다. 글만 써서는 먹고살 수 없어 부단히 전국에 있는 학교, 기관, 도서관, 독립서점, 기업 등을 찾기 때문이다. 강연, 북토크, 작가와의 만남, 북콘서트 등 다양한 이름이 붙지만 결국 말을 해야 하는 자리다. 글을 쓰기 위해서 글 쓰는 일에 관해 말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글로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빛에 힘입고 돌아오는 쪽은 늘 나다. 글 쓸 용기가 생겼다는 말, 오늘부터 꾸준하게 기록하기 시작해야겠다는 말 덕분에 다시 쓰고 말할 용기를 얻는다.
경북도청 강연을 위해 이동하는 길이었다. “말무덤이 있네요?” 운전하던 편집자님이 표지판을 보고 말했다. 그때까지 당연히 말(馬)의 무덤일 것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말무덤 표지판이 다시 등장했다. “그 말이 아닌가 봐요!” 말을 따라 눈길을 돌리니 말무덤(言塚)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기 가볼까요?” 편집자님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말무덤에 깃들게 되었다. 말무덤이라고 적혀 있는 곳에는 비석이 죽 늘어서 있었다. 말이란 으레 사람들의 머리에 남거나 가슴에 맺히기 때문이어서일까, 봉분은 없었다. 비석에는 말에 대한 속담이나 격언이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말을 독려하기보다 신중히 가려 하기를 바라는 문장이었다.
몇백년 전 이 마을에는 성씨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사소한 말실수가 싸움이 되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가던 현명한 나그네가 서로를 헐뜯는 말, 미움이 가득한 말, 흉흉한 말을 한데 모아 주둥이가 긴 그릇에 담아 묻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 전체가 평온해졌다는 것이다.
말무덤을 둘러싼 말들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평소에 말이 많아서 잊을 만하면 말실수하는 나를 돌아보는 행동이었을까.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지 체득하지는 못한 말을 되새기는 과정이었을까.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린다 등 말의 무게를 헤아리게 하는 말이었다.
말을 조심히 하라는 것도 말로 해야 알아듣는다는 게 역설적이지만, 말하러 가는 길에 만난 말들 덕분에 나는 살이 되기도 칼이 되기도 하는 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혐오의 언어, 차별의 언어, 비난의 언어, 배제의 언어 반대편에는 배려의 언어, 연대의 언어, 평등의 언어, 격려의 언어가 있다. 우리는 ‘말무덤’이 아니라 ‘말요람’에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말을 많이 한 날에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앞서 글 쓰기 위해 말한다고 했지만, 정작 말을 쏟아내고 나면 더 이상 백지 위에서 말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치 말과 글의 총량이 정해진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불필요한 말을 줄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못다 한 말을 글로 썼다. 글 쓰는 동안은 신중해지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말무덤에서 죽지 않고 태어나는 말을 상상했다. 말이 묻히는 곳에서 싹트는 말이라면 침묵만 한 게 없을 것이다. 침묵은 ‘말 없음’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더없이 강력한 말하기로 작동한다. 어떤 위로가 적당할지 모르겠을 때 가만히 다가가 쥐는 손이 온기와 진심을 고스란히 전달하듯이.
국문과 교수인 허문오는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학생 이강의 글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빠져든다. 이강이 친구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운데, 그것이 실제인지 허구인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허문오는 그 모호함 속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버전을 골라 믿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에 등장하는 허문오가 이강의 글에 빠져든 과정을 보면 그는 단 한 번도 ‘이것이 사실인가’ 의심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가 작가로서의 열패감, 라이벌에 대한 오랜 질투심을 해소해주기에 계속 읽고, 믿는다. 그는 특별히 어리석거나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이야기를 갈망했고, 그 갈망이 결국 판단력을 마비시켜 삶을 무너뜨린다.
이는 평생 텍스트를 읽고 진위를 가리는 훈련을 해온 전문가조차 욕망 앞에서는 비평가의 눈을 닫아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확증편향이 무지의 문제가 아닌 욕망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를 사회 전체의 구조적 현상과 등치시키는 것은 성급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밑바닥에 흐르는 메커니즘은 오늘날 공론장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맨 끝줄 소년’으로 본 확증편향무지의 문제가 아닌 욕망의 문제검증은 ‘결론 정당화 수단’ 전락할 얘기 없으면 차라리 입을 닫자
유튜브 앱을 열면 자기 주장만 옳다고 목청 높이는 이들이 넘쳐난다. 진영과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사건, 같은 발언이 정반대로 해석되고 비틀어진다. 그런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대로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여기서 개인의 심리적 습관과 플랫폼 구조의 문제를 구분해서 볼 필요는 있다. 허문오의 믿음이 순전히 개인적 갈망에서 비롯됐다면, 오늘날의 확증편향은 유튜브 알고리즘과 커뮤니티 게시판이 각자의 성향을 정교하게 학습해 맞춤형 서사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훨씬 더 구조적이고 산업화된 현상이다. 개인의 인지적 약점이 플랫폼 경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강화되고 수익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개인이 정치인이나 언론처럼 여론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특정 진영이나 개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할 수 있어서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을 보자. 법원은 여러 차례 선거무효 소송을 진행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에 대한 감사와 수사도 이어졌지만, 전국 단위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과 유튜버들은 관리 부실이나 절차상 문제를 부정선거의 증거로 확대 해석한다. 이는 윤어게인, 극우 등 특정 세력 맞춤용 주장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알고리즘에 올라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믿고 퍼뜨린다.
걸그룹 멤버의 발언을 둘러싸고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식 표현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자, 특유의 자의식으로 충만한 유명 정치인은 SNS에 지역과 표현 방식을 임의로 구분 짓는 기준을 제시하며 극우 몰이에 뛰어들었다. 언어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뚜렷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구분이고, 같은 진영에서조차 “바보 같은 짓”이란 반응이 나오는데도 무리수를 두며 믿고 싶은 서사를 써내려간다. 검찰의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둘러싼 강경파들의 주장도 본질적으로 똑같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는 검찰 개혁 반대라는 도식을 정해놓고 이념 전쟁식으로 몰아가는 그들로 인해 알고리즘은 또 한번 갈등과 분열의 시나리오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 전개에서 검증은 결론을 내리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이미 내린 결론을 정당화하는 절차로 뒤바뀐다. 허문오는 진실을 확인하는 대신 다음 이야기를 갈구했고, 그 갈망은 그를 범죄로까지 몰아넣었다. “할 얘기가 없으면 그냥 안 해도 되지 않나.” 허문오의 라이벌이 그에게 던진 말은 현실의 공론장에도 유효하다. 경찰의 수사권 독점에 대한 우려를 반개혁으로, 경상도 사투리와 구분하기 어려운 종결어미를 극우의 말투로, 선거관리위원회의 허접한 일처리를 부정선거로 몰아가기 전에 한 번쯤 스스로를 의심해볼 순 없나. 자신의 편향된 세계관과 발언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한 번쯤은 입을 다물자.
과거 서민들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통학 차량의 대명사였던 ‘봉고차’가 전기차 시대를 맞아 가장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변신했다.
기아가 선보인 첫 중형 목적기반모빌리티(PBV) ‘PV5’는 단순한 승합차를 넘어 공간의 개념을 통째로 바꾼 차량이다. 요즘 핫하다던 PV5 패신저 모델을 이틀 동안 타고 서울 도심과 자유로 등 고속화도로를 직접 달려봤다.
운전석에 올라타자마자 기존 승합차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이색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탁 트인 시야다. 앞 유리가 넓어 전방 개방감이 압도적이다. 1열 운전석과 조수석의 양옆 창문은 탑승자의 허리선까지 내려올 정도로 깊게 파여 몸이 붕 뜬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우주선 조종석에 앉아 비행을 준비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좌우 A필러 부분의 작은 쪽창도 시야를 한층 더 넓혀줬다.
시트는 일반 승용차보다 꽤 높았다. 옆을 지나는 대형 세단이나 웬만한 SUV의 천장이 내려다보일 정도였다. 차가 워낙 높다 보니 ‘운전하기 너무 큰 차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본격적인 주행에 나서니 이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실제 코너를 돌거나 좁은 길을 다녀보면 차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PV5는 전장 4700㎜, 전폭 1900㎜로 보기와 달리 준중형 SUV인 스포티지와 엇비슷한 덩치를 지녔다. 운전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다. 반면 전고는 1905㎜로 껑충 높다. 그 덕에 실내 공간은 극대화됐다. 다마스나 레이처럼 전폭 대비 전고가 높은 차량은 무게중심이 위로 쏠려 거동이 불안해지기 쉽지만, PV5는 차체 바닥에 묵직한 배터리를 깐 덕분에 주행 안정감을 탄탄하게 확보했다.
전기차 특유의 매끄럽고 안락한 승차감은 이 차의 가장 큰 미덕이다. 내연기관 상용차의 특징인 거친 진동이나 소음이 전혀 없고, 출발하거나 속도를 올릴 때 울컥거림 없이 부드럽게 나아갔다. 1열보다 바닥면이 낮고 휠베이스 중간에 위치한 2열 좌석 승차감은 패밀리카나 택시로 쓰기에 손색이 없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덕분에 지상에서 차량 바닥까지의 높이가 기존 승합차보다 낮아 어린아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도 계단을 오르내리듯 편안하게 타고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인성이 뛰어난 12.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에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한 부분도 편의성을 더했다.
트렁크 공간도 인상적이었다. 기본 용량이 1330ℓ로,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2310ℓ까지 확장돼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움직이는 생활 공간’에 닿으려는 진화가 엿보였다. 유튜브 등에는 PV5를 캠핑용으로 활용하는 후기 영상이 적지 않다. 각종 캠핑 장비를 싣기에 널찍하고 야외에서 전기제품을 쓸 수 있는 ‘V2L’ 기능이 구비돼 차박용으로 애용하는 사람이 많다. 다만 2열을 접고 바닥을 완벽하게 평탄화하려면 전용 에어매트나 차박용 평탄화 키트를 따로 사야 해 추가 비용이 든다. 맞춤형 에어매트는 20만~30만원대, 수납 서랍이 포함된 전문 모듈형 평탄화 키트는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 주머니 사정을 고민하게 만든다.
운행하면서 아쉬운 부분도 눈에 밟혔다. 높은 전고 덕분에 실내 개방감은 크지만, 도심 속 주차장을 드나들 때는 내내 불안감이 엄습했다. 차량 전고가 대부분의 지하주차장 제한 높이인 2.1m보다는 낮아도 진입할 때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제한 높이가 1.8m인 오래된 건물도 종종 있어 승용 목적으로 구매하려는 소비자라면 자주 이용하는 주차장 환경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타협한 흔적이 보였다. 상자형 디자인을 채택한 데다 71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해 고속 주행 시 전비가 다소 떨어진다. 1회 충전 공식 주행거리는 복합 기준 35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겨울철 혹한기 고속도로 주행 시에는 280㎞ 안팎까지 뚝 떨어진다는 후기도 있다. 최고 출력이 160마력대 초반인 데다 최고 속도도 시속 139㎞로 제한돼 시원스러운 가속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도심 속 배송이나 단거리 레저용으로는 훌륭하지만 장거리 주행이 잦다면 충전 압박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주말 감성 캠핑을 계획한다면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설정할 때 조금은 신중해져야 할 듯했다. 탁 트인 개방감과 널찍한 적재 공간에 취해 무턱대고 깊은 산속이나 오지로 핸들을 꺾었다가는, 자연의 낭만을 즐기기도 전에 인근 초고속 충전소를 찾아 헤매는 ‘스릴’을 경험할 수도 있다. 로맨틱한 풍경 속에서 배터리 경고등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먼 곳 대신 서울 근교의 호젓한 캠핑장을 찾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글 쓰기 위해서 말한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 생활이 그렇다. 글만 써서는 먹고살 수 없어 부단히 전국에 있는 학교, 기관, 도서관, 독립서점, 기업 등을 찾기 때문이다. 강연, 북토크, 작가와의 만남, 북콘서트 등 다양한 이름이 붙지만 결국 말을 해야 하는 자리다. 글을 쓰기 위해서 글 쓰는 일에 관해 말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글로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빛에 힘입고 돌아오는 쪽은 늘 나다. 글 쓸 용기가 생겼다는 말, 오늘부터 꾸준하게 기록하기 시작해야겠다는 말 덕분에 다시 쓰고 말할 용기를 얻는다.
경북도청 강연을 위해 이동하는 길이었다. “말무덤이 있네요?” 운전하던 편집자님이 표지판을 보고 말했다. 그때까지 당연히 말(馬)의 무덤일 것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말무덤 표지판이 다시 등장했다. “그 말이 아닌가 봐요!” 말을 따라 눈길을 돌리니 말무덤(言塚)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기 가볼까요?” 편집자님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말무덤에 깃들게 되었다. 말무덤이라고 적혀 있는 곳에는 비석이 죽 늘어서 있었다. 말이란 으레 사람들의 머리에 남거나 가슴에 맺히기 때문이어서일까, 봉분은 없었다. 비석에는 말에 대한 속담이나 격언이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말을 독려하기보다 신중히 가려 하기를 바라는 문장이었다.
몇백년 전 이 마을에는 성씨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사소한 말실수가 싸움이 되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가던 현명한 나그네가 서로를 헐뜯는 말, 미움이 가득한 말, 흉흉한 말을 한데 모아 주둥이가 긴 그릇에 담아 묻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 전체가 평온해졌다는 것이다.
말무덤을 둘러싼 말들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평소에 말이 많아서 잊을 만하면 말실수하는 나를 돌아보는 행동이었을까.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지 체득하지는 못한 말을 되새기는 과정이었을까. 물이 깊을수록 소리가 없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뜨린다 등 말의 무게를 헤아리게 하는 말이었다.
말을 조심히 하라는 것도 말로 해야 알아듣는다는 게 역설적이지만, 말하러 가는 길에 만난 말들 덕분에 나는 살이 되기도 칼이 되기도 하는 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혐오의 언어, 차별의 언어, 비난의 언어, 배제의 언어 반대편에는 배려의 언어, 연대의 언어, 평등의 언어, 격려의 언어가 있다. 우리는 ‘말무덤’이 아니라 ‘말요람’에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말을 많이 한 날에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앞서 글 쓰기 위해 말한다고 했지만, 정작 말을 쏟아내고 나면 더 이상 백지 위에서 말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치 말과 글의 총량이 정해진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불필요한 말을 줄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못다 한 말을 글로 썼다. 글 쓰는 동안은 신중해지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말무덤에서 죽지 않고 태어나는 말을 상상했다. 말이 묻히는 곳에서 싹트는 말이라면 침묵만 한 게 없을 것이다. 침묵은 ‘말 없음’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더없이 강력한 말하기로 작동한다. 어떤 위로가 적당할지 모르겠을 때 가만히 다가가 쥐는 손이 온기와 진심을 고스란히 전달하듯이.
국문과 교수인 허문오는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학생 이강의 글에서 재능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빠져든다. 이강이 친구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재로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운데, 그것이 실제인지 허구인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허문오는 그 모호함 속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버전을 골라 믿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에 등장하는 허문오가 이강의 글에 빠져든 과정을 보면 그는 단 한 번도 ‘이것이 사실인가’ 의심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가 작가로서의 열패감, 라이벌에 대한 오랜 질투심을 해소해주기에 계속 읽고, 믿는다. 그는 특별히 어리석거나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이야기를 갈망했고, 그 갈망이 결국 판단력을 마비시켜 삶을 무너뜨린다.
이는 평생 텍스트를 읽고 진위를 가리는 훈련을 해온 전문가조차 욕망 앞에서는 비평가의 눈을 닫아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확증편향이 무지의 문제가 아닌 욕망의 문제라는 뜻이다. 이를 사회 전체의 구조적 현상과 등치시키는 것은 성급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밑바닥에 흐르는 메커니즘은 오늘날 공론장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맨 끝줄 소년’으로 본 확증편향무지의 문제가 아닌 욕망의 문제검증은 ‘결론 정당화 수단’ 전락할 얘기 없으면 차라리 입을 닫자
유튜브 앱을 열면 자기 주장만 옳다고 목청 높이는 이들이 넘쳐난다. 진영과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사건, 같은 발언이 정반대로 해석되고 비틀어진다. 그런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대로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여기서 개인의 심리적 습관과 플랫폼 구조의 문제를 구분해서 볼 필요는 있다. 허문오의 믿음이 순전히 개인적 갈망에서 비롯됐다면, 오늘날의 확증편향은 유튜브 알고리즘과 커뮤니티 게시판이 각자의 성향을 정교하게 학습해 맞춤형 서사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훨씬 더 구조적이고 산업화된 현상이다. 개인의 인지적 약점이 플랫폼 경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강화되고 수익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개인이 정치인이나 언론처럼 여론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특정 진영이나 개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할 수 있어서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을 보자. 법원은 여러 차례 선거무효 소송을 진행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에 대한 감사와 수사도 이어졌지만, 전국 단위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과 유튜버들은 관리 부실이나 절차상 문제를 부정선거의 증거로 확대 해석한다. 이는 윤어게인, 극우 등 특정 세력 맞춤용 주장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알고리즘에 올라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믿고 퍼뜨린다.
걸그룹 멤버의 발언을 둘러싸고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식 표현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자, 특유의 자의식으로 충만한 유명 정치인은 SNS에 지역과 표현 방식을 임의로 구분 짓는 기준을 제시하며 극우 몰이에 뛰어들었다. 언어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뚜렷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구분이고, 같은 진영에서조차 “바보 같은 짓”이란 반응이 나오는데도 무리수를 두며 믿고 싶은 서사를 써내려간다. 검찰의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둘러싼 강경파들의 주장도 본질적으로 똑같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는 검찰 개혁 반대라는 도식을 정해놓고 이념 전쟁식으로 몰아가는 그들로 인해 알고리즘은 또 한번 갈등과 분열의 시나리오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 전개에서 검증은 결론을 내리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이미 내린 결론을 정당화하는 절차로 뒤바뀐다. 허문오는 진실을 확인하는 대신 다음 이야기를 갈구했고, 그 갈망은 그를 범죄로까지 몰아넣었다. “할 얘기가 없으면 그냥 안 해도 되지 않나.” 허문오의 라이벌이 그에게 던진 말은 현실의 공론장에도 유효하다. 경찰의 수사권 독점에 대한 우려를 반개혁으로, 경상도 사투리와 구분하기 어려운 종결어미를 극우의 말투로, 선거관리위원회의 허접한 일처리를 부정선거로 몰아가기 전에 한 번쯤 스스로를 의심해볼 순 없나. 자신의 편향된 세계관과 발언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한 번쯤은 입을 다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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